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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生の豚カツ

2016年04月21日

あの豚カツについて話すとしたら、しばらく記憶の糸をたとらなければならない。今から30年以上も前の出来事なのだから。でも、あの時感じた味と香りは今でもそのまま残っている。 豚肉といっても愛らしい揚げ物の姿に、プルコギやサムギョプサルとは比べものにならない分厚さとサクサクとした食感、そのうえあのソースの味といったら! 生まれて初めての味!

일어기사에 대천해수욕장 copy

私が幼い頃を過ごしたのは海水浴場で有名なテチョンというところだ。 地形的には三面が海に面した韓国の西海岸に位置する。 今はサマーフェスティバルと各種スポーツとで有名だが、当時は海に近い小さな田舎に過ぎなかった。

「ねえ、あそこ行ってみた? ジナはもう行ったって」
田舎にはじめてできたレストランは子供たちの心をわしづかみにした。まずは店名から驚かされた。 『ロマンス レストラン』。
「豊作製菓」「乙支書店」「私たちの文房具」といった意味の、ハングルと漢字を使った看板を掲げた店の中に、英語で書かれた店の名前…、さらに輝く照明とピンク色の看板まで…。
オムライス、豚カツ、ハヤシライス…。そこで出すメニューもまた、初めて耳にする、一度も食べたことのないものだった。 「どんな見た目なんだろう」「どんな味がするのかな?」「すごーく高いかな」、子供たちはその場を通るたびに、昨日も一昨日もした話を繰り返した。
「オムライスはご飯で作ってあったし、豚カツは豚肉で作ったものだけど、ほんと信じられないくらいおいしいんだから」。週末はいつも家族とそこで食事をするという金持ちの娘ジナは当然憧れの対象になった。

ある日、私にもチャンスがやってきた。
兄と私と弟の三きょうだいであるわが家に、先生三人が一緒に家庭訪問されることになったのだ。父と母はロマンスレストランの豚カツで接待することに決め、私の胸は期待に膨らんだ。  夕食の時間になった。ところがいつもの食卓が私たちを待っていた。
「お母さん! 今日は豚カツを食べる日じゃないの?」
「あんたたちもお腹がすくだろうから私たちは先に食べましょう」
母の断固たる口調に反論の余地はなく私はスプーンを手に取った。豚カツを待ち構えていた口にご飯がとおるわけがなかった。 (何日も前から楽しみにしていたのに…)、(あした友だちに自慢するつもりだったのに…)。涙が溢れそうになったが空しい気持ちを必死になっておさえた。
一時間くらい後に先生方が到着し、まもなく待ちに待った豚カツが配達された。 チジミを焼くときの油のにおいとはまた別の香ばしい油のにおいと、甘酸っぱいソースのにおいが漂ってきた。ご飯茶碗、おかずのお皿が分けられているわが家の食膳と違い、一枚の大皿にぜんぶ盛るという見た目も珍しくて新しかった。

皿にはソースのかかった豚カツとサラダ、たくあんがあった。おまけに箸ではなくナイフで切ってフォークで食べる方式が私の感動を頂点にいたらせた。なんておしゃれなんだろう…。
母は子ども部屋に行っていなさいという目くばせをずっと私に送り続けたが、私は何度も何度も見に行った。先生方はビールと豚カツを食べながら両親と話を交わした。ナイフが入れられるたびに減っていく豚カツとともに、私の心も燃え尽きていった。

일본기사에 돈가스 copy

「みんなこっちに来なさい!」
先生方が帰った後、お膳を片付けていた母が私たちを呼んだ。お膳には半分くらい残った豚カツが三枚、置かれていた。 夕食の時間で先生たちも空腹だっただろうに…。
私は興奮した。なくなったと思っていた豚カツが残っていたなんて…。すぐに座って豚カツに対面した。この瞬間をどれほど待ったことか。完璧な豚カツではないが、私はフォークとナイフを握った。
兄と弟はフォークでとってあっという間に食べてしまったが、私はゆっくり不器用にナイフを使いながらその味を吟味してまた吟味した。 粗雑な仕草で大人を真似る私を見て、母は静かに笑った。
母になった今考えてみると、娘に申し訳なくて痛ましい気持ちだったのかもしれない。

豚カツが日本食だと知ったのは社会人になってからだ。 日本は豚カツの本場らしく美味しい豚カツ屋さんがどこにでもある。 味はもちろんのこと、価格も安く種類も多様だ。 興味深いのは韓国の豚カツと日本の豚カツがちょっと違うという事実だ。
韓国では豚カツは切らずに皿に載って出てくる。 切りながら食べるので当然ナイフ・フォークとともに出てくる。 ソースも豚カツの上にあらかじめかけてあり、肉は厚くなく平たい。 また、日本のようにみそ汁を合わせるというよりスープを合わせることが一般的であり、キムチとともに食べたりもする。

それにしても、どんなに美味しい豚カツを食べてもあの日に食べた半分の豚カツの感動には比べようがない。 戸の向こうに立っている教え子を思いやる、先生のあたたかい気持ちが重なった豚カツの思い出は、歳月が流れるほど風味を増していく。

家庭訪問

韓国の新学期は3月から始まり、一年に一度、担任、クラスメイト、班が変わる。 1980年代の家庭訪問は、生徒たちの生活状況を見て困窮している生徒はいないか、助けが必要な学生はいないのかなどを把握するために実施された。
‘先生の影も踏まなかった’時代であるから、子供を任せた親たちは家庭訪問の際は先生を丁重に心を込めてもてなした。そのような家庭訪問を経験して育った私は、先生を玄関の外に立たせたまま進める日本式家庭訪問に少なからず驚いた。
急変する社会の雰囲気とともに現在の韓国で家庭訪問は見なくなって久しい。 問題を起こす生徒に限り家庭訪問し、ふつうは学校で両親との教育相談を中心におこなっている。

韓国語を勉強中の方は、韓国語で上の記事を読んでみましょう!

선생님의 돈가스

그 돈가스를 이야기하자면 한참 기억을 되짚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니까. 하지만 그때 느낀 맛과 향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돼지고기라더니 사랑스러운 튀김의 모습에, 불고기나 삼겹살에 비할 바 아닌 두툼한 두께와 바삭한 식감, 거기에 소스 맛은 또 어땠는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 맛!

한국어기사에 대천해수욕장 copy

내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대천이라는 곳이다. 지형적으로 보자면 삼면이 바다인 한국의 서해안 쪽에 위치한다. 지금은 여름 축제와 각종 스포츠로 유명하지만, 당시는 바다에 위치한 작은 지방일 뿐이었다.

“너 거기 가 봤어? 진아는 가봤대. ”
시골 마을에 최초로 생긴 레스토랑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선 가게 이름이 남달랐다. ‘로맨스 레스토랑’.
풍년제과, 을지 서점, 우리 문방구…죄다 한글이나 한자를 사용한 이름뿐인데 영어로 적혀진 이름이라니…거기에 반짝이는 조명과 분홍색 간판까지…
오므라이스, 돈가스, 하이라이스…그곳에서 파는 메뉴 또한 처음 들어본,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어떻게 생겼을까?’, ‘무슨 맛일까?’, ‘엄청나게 비싸겠지?’ 아이들은 그곳을 지나며 어제도 엊그제도 한 말을 하고 또 했다.
“오므라이스는 밥으로 만들었고, 돈가스는 돼지고기로 만들었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주말마다 가족들과 가서 먹는다고 하는 부잣집 딸 진아는 당연히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어느 날 내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삼 남매인 우리 집에 선생님 세 분이 함께 가정방문을 오신다는 거다. 엄마와 아빠는 로맨스 레스토랑의 돈가스를 대접하기로 했고 나는 기대에 부풀었다. 저녁 시간이 됐다. 그런데 일상과 다름없는 밥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엄마! 오늘 돈가스 먹는 날 아니야?”
“너희 배고플 터인데 우리는 먼저 먹자”
엄마의 단호한 말씀에 반론의 여지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돈가스를 기다리고 있던 입에 밥이 넘어갈 리 없었다. ‘며칠 전부터 기다렸는데….’, ‘내일 아이들에게 자랑하려 했는데….’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서운한 마음을 참고 또 참았다.
한 시간쯤 뒤 선생님들이 오셨고 곧이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돈가스가 배달됐다. 부침개를 부칠 때의 기름 냄새와는 또 다른 맛 난 기름내에 새콤달콤한 소스의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밥그릇, 반찬 그릇으로 나누어지는 우리 집 상차림과 달리, 한 개의 큰 접시에 모든 것을 담은 모양새도 신기하고 새로웠다.
접시에는 소스를 얹은 돈가스와 샐러드, 단무지가 있었다. 거기에 더해 젓가락이 아닌 나이프로 잘라 포크로 먹는 방식이 내 감동의 정점을 찍었다. 어찌나 세련되게 느껴지던지….
엄마는 방에 가 있으라는 눈짓을 계속 보냈지만 나는 가서 또 보고 또 보고 했다. 선생님들은 맥주와 돈가스를 드시며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셨다. 선생님이 잘라드시는 돈가스가 한 점, 한 점, 없어질 때마다 내 마음도 타들어 갔다.

한국어기사에 돈가스 copy

“얘들아! 이리 와봐라!”
선생님들이 돌아가시고 상을 치우시던 엄마가 우리를 불렀다. 상 위에는 반쯤 남은 돈가스가 세 개 놓여 있었다. 저녁 시간이라 선생님들도 시장하셨을 터인데….
나는 너무 신이 났다. 당연히 없을 줄 알았던 돈가스가 남아있었으니…. 냉큼 앉아 돈가스를 받아들었다. 이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인가. 비록 온전한 돈가스는 아니지만 난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오빠와 동생은 포크로 찍어 순식간에 먹어버렸지만 난 천천히 서툰 칼질을 하며 그 맛을 음미하고 또 음미했다. 어설픈 어른 흉내를 내는 나를 보면서 엄마는 조용히 웃으셨다.
엄마가 된 지금 생각해 보니 딸아이에게 미안하고도 안쓰러운 마음이셨을 듯하다.

돈가스가 일본 음식이라는 것을 안 것은 학생 신분을 벗고 나서다. 일본에 오니 돈가스의 본고장답게 맛난 돈가스 집이 지천이다. 맛은 물론 가격도 저렴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 돈가스와 일본 돈가스가 좀 다르다는 사실이다.
한국식 돈가스는 미리 자르지 않는다. 썰어가며 먹기 때문에 당연히 나이프, ·포크와 함께 나온다. 소스도 돈가스 위에 미리 뿌려 나오며 고기도 두껍지 않고 넓적하다. 또 일본처럼 된장국보다는 수프와 함께 먹는 것이 일반적이며. 김치와 함께 먹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돈가스를 먹은들 그때 먹었던 반쪽짜리 돈가스의 감동에 비할까. 문밖에 서 있는 제자를 생각하는 선생님의 따스한 마음이 버무려져 그 돈가스의 추억은 세월이 흐를수록 풍미를 더해간다.

가정방문

한국의 새 학기는 3월부터 시작되며, 일 년에 한 번씩 담임선생님, 친구들, 반이 모두 바뀐다. 1980년대 가정방문은 학생들의 사는 형편을 살피고 곤란에 처한 학생은 없는지,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 없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됐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던’ 시기인지라 자식을 맡긴 부모들은 가정방문 오신 선생님을 성심성의껏 대접했다. 그런 식의 가정방문을 경험하며 자랐던 나는 선생님을 문밖에 세워둔 채 진행하는 일본식 가정방문에 적지 않게 놀랐다.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현재 한국에서의 학생 가정방문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에 한해 방문하며 학교에서 부모와의 교육상담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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