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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氏朝鮮時代の派閥をわかりやすく解説!韓国時代劇の政争がこれでよく分かる!!

2021年08月17日

李氏朝鮮時代の派閥をわかりやすく解説!韓国時代劇の政争がこれでよく分かる!!

韓国の時代劇の見どころの一つは、ドロドロの権力争いに立ち向かう主人公の姿です。陰謀と策略に満ちた宮中で、主人公の涙ぐましい忍耐や努力が視聴者の共感を呼びます。
時代劇に登場する政争は実際の派閥対立を素材にしていますので、派閥を知っていると時代劇をより楽しむことができます。
そこで今回は、朝鮮時代の派閥について、わかりやすく解説します。

朝鮮時代に派閥(党派)が出来た理由は?

朝鮮王朝は儒教(なかでも朱子学)を国家運営の理念にしていました。そのため、儒教をいかに解釈するかで、国家の方針が左右されることになりました。
この儒教に対する解釈によって形成されていったのが朝鮮時代の派閥で、学問的な論争がベースとなって出来たものでした。
派閥は個人が選択するものでなく、父親の派閥を代々世襲することになります。そのような仕組みのもとでは、自身の派閥が優勢になるか否かで王朝内での一族の地位が決定するため、単なる学問的な論争を超えて、権力闘争としての党派争いが激しく繰り広げられました。

朝鮮時代にはどんな派閥(党派)があったの?韓国語での言い方もご紹介!

では、朝鮮時代にはどのような派閥(党派)があったのでしょうか?またそれぞれの派閥を韓国語ではなんと呼ぶのでしょうか?時代を追いながらみ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

李氏朝鮮時代の派閥をわかりやすく解説!韓国時代劇の政争がこれでよく分かる!!

①勲旧派と士林派

朝鮮王朝での派閥間対立の起源は、成宗(성종ソンジョン、在位1469~94)の時代に遡ります。成宗は在野勢力であった慶尚道(경상도)地方の嶺南(영남ヨンナム)学派の儒学者たちを中央官僚として積極的に抜擢し、世襲により権力基盤を固めた既存の官僚層を牽制しようとしました。この時の新興勢力を「士林派(사림파サリムパ)」、既存勢力を「勲旧派(훈구파フングパ)」と呼びます。両派は15〜16世紀に激しい闘争を繰り広げて互いに追放と復権を繰り返しますが、やがて勲旧派が勝利し、士林派は地方に下って各地に儒教教育機関である書院を設立します。

②東人と西人

その後、宣祖(선조ソンジョ、在位1567~1608)の時代になると書院を基盤にした士林派がふたたび政界に進出するようになります。そして、たちまち勲旧派に代わって政権を独占します。そのような中、人事権を握る中堅官僚の就任をめぐる対立で、士林派は東人(동인トンイン)と西人(서인ソイン)の2つの派閥に分裂します。

③四色党派(南人・北人・老論・少論)

16世紀末から17世紀にかけて、東人は学閥の系統によってさらに南人(남인ナミン)と北人(북인プギン)に分裂し、西人もまた学閥によって老論(노론ノロン)と少論(소론ソロン)に分裂します。これら南人・北人・老論・少論の4つの派閥は「四色党派(ししきとうは)」と呼ばれ、その闘争がその後の王朝の行方を左右することとなります。
学閥として、南人は慶尚道を基盤とする嶺南学派、老論は京畿道(경기도キョンギド)と忠清道(충청도チュンチョンド)を基盤とする畿湖(기호キホ)学派と一体のものとなっていきました。

ご紹介した派閥はその後、朝鮮王朝の終焉まで影響を及ぼします。

派閥は朝鮮王朝の終焉まで?!韓国の歴史や言葉に興味があればソウルメイト韓国語学校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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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조선시대의 파벌을 알기 쉽게 해설! 한국 사극의 정권 다툼을 한 눈에 정리!!

李氏朝鮮時代の派閥をわかりやすく解説!韓国時代劇の政争がこれでよく分かる!!

한국 사극의 볼거리 중 하나는 얽히고설킨 권력 다툼에 맞서는 주인공의 모습이지요. 음모와 계략으로 가득 찬 궐 안에서 주인공의 눈물겨운 인내와 노력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요.
사극에 등장하는 정권 다툼은 실제 파벌 간 대립을 소재로 하기 때문에 파벌들을 알아두면 사극을 더욱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에는 조선시대의 파벌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조선시대에 파벌(당파)이 만들어진 이유는?

조선왕조는 유교(그중에서도 주자학)를 국가 운영의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방침이 좌우되었습니다.
이 유교에 대한 해석에 따라 형성된 것이 조선시대의 당파인데요. 학문적인 논쟁을 바탕으로 생겨났습니다.
당파는 개인이 선택하는 게 아닌 아버지의 당파를 대대로 세습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자신이 속한 당파의 우세 여부에 따라 왕조 내에서의 일족(一族)의 지위가 결정되기 때문에 단순한 학문적인 논쟁을 넘어 권력 투쟁으로 당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어떤 파벌(당파)이? 한국어로도 소개!

그럼 조선시대에는 어떤 파벌(당파)이 있었을까요? 또 각각의 당파를 한국어로는 뭐라고 부를까요? 시대에 따라 살펴보겠습니다.

李氏朝鮮時代の派閥をわかりやすく解説!韓国時代劇の政争がこれでよく分かる!!

①훈구파(勲旧派)と사림파(士林派)

조선왕조 당파 간 대립의 기원은 성종(成宗, 재위 1469~94)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종은 재야 세력이었던 경상도(慶尚道) 지방의 영남(嶺南)학파의 유생들을 중앙관료로 적극 발탁하여 세습에 의해 권력 기반을 굳힌 기존 관료층을 견제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때의 신흥 세력을 ‘사림파(士林派)’, 기존 세력을 ‘훈구파(勲旧派)’라고 부릅니다. 두 당파는 15~16세기 치열한 투쟁을 벌이며 서로 추방과 복권을 반복하는데 결국 훈구파의 승리로 사림파는 지방으로 내려가 각지에 유교교육기관인 서원을 설립합니다.

②동인(東人)과 서인(西人)

그후 선조(宣祖, 재위 1567~1608) 때에 이르러 서원을 기반으로 한 사림파가 다시 정계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훈구파를 대신하여 정권을 독점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인사권을 쥔 중간관료의 취임을 둘러싼 대립으로 사림파는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의 두 당파로 나뉘게 됩니다.

③사색당파(四色党派) : 남인(南人)・북인(北人)・노론(老論)・소론(少論)

16세기 말부터 17세기에 걸쳐 동인은 학벌의 계통에 따라 또 다시 남인(南人)과 북인(北人)으로 분열되고 서인도 다시 학벌에 따라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분열됩니다. 이들 남인(南人)・북인(北人)・노론(老論)・소론(少論)의 네 당파를 ‘사색당파(四色党派)’라고 부릅니다.
학벌로서 남인은 경상도(慶尚道)를 기반으로 하는 영남(嶺南)학파, 노론은 경기도(京畿道)와 충청도(忠清道)를 기반으로 하는 기호(畿湖)학파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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